
Guillaume Dupay만큼 사랑에 관한 노래를 많이 작곡한 사제는 없다고 합니다. 지난 몇 세기 동안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몇몇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. 단테가 더 나은 시인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, 우리가 그 시대의 시인 사케티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문학사 시대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. 사실 Dufay는 자신의 작품보다 이름이 훨씬 더 잘 알려진 귀족이었습니다. Dufay는 1400년경 프랑스에서 태어나 20세 때 이탈리아에 있었습니다. 1426년에 작성되었습니다. 1427년 Dufay는 볼로냐에 있었고 이듬해 그는 도시에서 사제로 성임되었습니다. 그런 다음 그는 로마 교황 합창단에서 기수로 몇 년을 보냈습니다. 1437년부터 그는 페라라에 있었다. 이듬해 그는 사보이 궁정으로 옮겨 7년 동안 일했다. 그 후 Dufay는 대성당 평의회 회원이되었고 공식적으로 Burgundy 법원에서 합창 지휘자의 명예 칭호를 받았습니다. 캉브레에 살면서 이곳 저곳을 많이 여행하다가 1474년에 세상을 떠났다. 그는 합창과 세속음악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. 그는 오늘날 15세기 음악의 상징으로 여겨진다. 실제로 생전에 그의 작품집이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은 부르고뉴 중부 지방의 샹송, 이탈리아, 오스트리아, 독일 등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고 한다.
처음에 말했듯이 판의 제목이 “안녕, 내 사랑”인 만큼 몇 개의 모테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랑에 대한 샹송이다. .. 뭐, 세대를 거듭하면서 인간의 본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.. 지금과 같다는 말이다. 부른게 좀 이상하고 좀 이해가 안가는게.. 이번판 두번째 곡의 경우 경쟁에서 밀려서 뭉개지는 괴로움을 노래하는데.. 가사가 대략 불건전하게.. 그의 사랑은 이제 끝났으니 아무도 그를 구할 수 없을 것이고, 그래서 나는 고통 때문에 이 약을 먹고 뒤질 것입니다. 비관적인 감정이 점재되어 있는 가사 때문에 건강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노래인 것 같아서 금지곡으로 흥행에 딱 맞았을 것 같다. 지금 기준으로 봐도 밋밋할 뿐.. 얼마 전에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어떤 패턴을 발견하고 코를 막고 코를 막는 황당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. 종교적으로 너무 편파적이어서 공연을 못 하게 된 거였거든요.. 사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서 모든 지혜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어요. 세계. 보고 듣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. 지는거냐며 애원하고 웃었다.. 미친거아냐.. -_-;; 그런 걸 보면 두파이가 살았던 15세기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융통성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.
이어주는 링크는 이번 에디션의 타이틀곡 ‘안녕, 내 사랑’이라는 음원이 있기 때문이다. 사실 이런곡은 깊어가는 겨울밤 따뜻한 방에서 듣고 동치미국수랑 먹으면 딱이죠.. 계절에 안맞는 느낌입니다.. 물론 이건 제 주관적인 느낌이고 사실 그런게 어딨어.. 배고파서 그런 생각을 했을뿐.. -_- ㅎㅎ
